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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마고란 상고시절 존재했다는 한국 전통의 이상향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영국에서의 나의 생활과 한국에서의 나의 생활을 비교하기에 이르렀다. 영국에서는 동양인 그리고 한국인임을 증명하는 한편 그 나라의 관습을 포용하는 나(신체와 작업을 포함한)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보여질 방향으로 삶의 스텐스를 정했었다. 또한 관계의 미학에 대한 영향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타자를 향한, 타자를 위한 삶, 타자와의 관계에서 만들어 지는 형상을 쫓았다. 동시에 '놀이'라는 나의 작업 개념을 실험했다. 나는 열심히, 그 누구보다 열심히 놀아보았다. -스스로 하는 놀이, 누군가와 함께하는 놀이도 포함해서- 그 놀이에는 물론 작품 제작도 포함되었다. 나는 최대한 내가 하고싶지 않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나누었다. 하기 싫은 놀이를 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무거운 재료를 사용하기 싫어서 가벼운 재료- 나무, 종이 등을 사용했으며 하면서도 좋고 하고 싶은 그림, 조각, 퍼포먼스를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그 종말에 가서는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엔 힘들어도 내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있을 수 도 있다는 삶의 철학을 받아들여야 했다. 한국에서의 나는 좀더 이 체계에 순응하는 한편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놀이, 내가 하고 싶은 놀이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보고 생각하며 드로잉과 조각, 퍼포먼스가 내포하는 '색'에 대한 고민과 '주체'에 대한 고민에 다시금 빠져들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중심'은 무엇인가. 박사를 하며 만난 교수님께 질문도 드렸다. "타자 지향 철학은 죽음이 그 종말이라도 타자를 지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면 좋을까요?" 가 그 질문이었다. 교수님은 "그건 주체에 대한 탐구가 역사적으로 진행 되어온 서양에서 그 이후에 나온 철학으로 한국에는 그런 역사 없기 때문에 너무 쫓지 않아도 된다." 라고 하셨다. 지난 영국에서의 날을 돌아보면 나는 확실히 주체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주어진 몇 년의 시간동안 다시 끔 주체를 세워 보려 한다. 이 전시가 그 초석이길 빈다. 나는 색과 형상을 다루면서 내 대학 동기들의 작품을 유심히, 열심히 비교한다. 나는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 다시 최초의 석사 지원 포트폴리오도 떠올린다. 나는 좀더 그들보다는 파스텔 톤에 가까운 색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무언가 거친 붓터치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빨강을 좋아한다. 이런 것들이다. 말로 옮기자면 말이다. 나는 지금 대전에 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있었던 땅이자 내가 자란 곳이다. 나는 이제 한화 팬이고 대전에서 무언가를 해보려한다. 선사유적지에서 보았던 초막 등을 떠올린다. 마고는 이 선비의 도시에서 내가 사는 방법,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고 느끼고 체화한 것들을 표현하는 제목이다. 또한 사실 이상향이라고 하기엔 그냥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그런 것을 보여주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고통도 있고 기쁨도 있는 지금 나의 삶이 이상향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마고는 선과악을 모두 포함하는, 놀이의 성격에 잘 맞는 그런 곳이었다고 한다. 풍요로워 동물을 잡아 먹을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여성신이 관리 하던 땅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아버지가 불분명했기 때문에 아이가 태어나는 가장 확실한 증거인 어머니로 대표되는 모계 사회였다고 한다. 이는 나에게 조금은 충격이어서 제목을 바꿀까 했지만 여성 상위 시대에 내가 느끼고 경험한 삶을 표현하려고 한 나의 원래 의도에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 그대로 하기로 했다. 마고는 동명의 영화 <마고>(2002)에서 따온 제목이기도 하다. 초등학교시절 아버지 따라간 비디오 대여점에서 본 빨간 딱지가 붙은 비디오 테이프이기도 하다. 그 비디오 테이프에는 계곡 앞에 나체의 여성들이 눕거나 늘어서 있는 당시 나의 나이에서는 충격적인 사진이 붙어있었는데, 어쩌면 그런 것들이 어느샌가 나의 가슴속에 들어앉아 야릇한 환상을 키워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언가 성적인 요소를 많이 섞어서 전시를 꾸며 볼까 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빼기로 했다. 대신 선악의 저편의 나의 놀이에 집중하기로 했다. 전시에 보여지는 드로잉들은 마치 그림 일기처럼 나의 다짐이나 고민, 세계를 바라보는 생각(또는 이미지)을 표현한 것이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색감과 형상을 연구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조각은 그런 드로잉에서 조각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은 것들을 만들어 보았다. 퍼포먼스는 작업실에서 찍거나 관객들 앞에서 한 퍼포먼스를 포함한다. 이 작업들의 공통점은 모두 '놀이'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모여 선악을 모두 포함한다는 9평에 펼쳐지는 작은 이상향 마고가 되기를 기원한다.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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