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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대의 구멍은 몇 개일까?

본인은 존재에 대한 의미를 구멍에서 찾았다. 구멍은 비유적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갈 탈출구, 혹은 생명이 출발한 엄마의 자궁이 될 수 있고, 존재자가 존재를 내뿜 는 현재라는 균열(틈)일 수도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구멍의 개념을 살펴보 면 다음과 같다.

 

본인은 병원에서 환자의 의안을 소독하던 중 “이거 볼 수 있어요?”라는 순수한 질문을 받았다. ‘의안도 시간이 지나면 환자가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사실을 찾아가 보니, 의안은 환자 자신에게 보이는 것이 아닌 타인에게 보 이는 또 다른 대상의 눈이 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즉 봄으로써 사유할 수 있었던 눈은 그 기능을 잃었지만, 외관만 재현된 눈이 남은 것이다. 여기서 타인에 게만 보이는 눈인 의안은 나의 조각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본인에겐 안구가 적출 된 공동(空洞)이 따뜻한 자궁처럼 보였고, 그 때문에 의안에 서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나에게 조각은 의안과 같은 것이다. 의안(조각)은 스스 로 사유할 수는 없지만, 대상 즉 타자가 되어 나라는 존재가 인식하는 주체가 될 수 있게 도와준다. 다시 말해 본인이 표현하는 구멍의 형태는 봄(regard), 즉 ‘존 재의 심장을 향해 뚫려 있는 구멍’1) 인 눈을 재현한다.

 

우리는 개인의 존재만을 가지고서는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 본인이 감각 한 것, 그 지각적 진리의 애매성(Ambiguity)을 존재가 터져 나오는 구멍으로 표현 하고 이를 매개로 타자와 관계 맺음으로써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고자 한다. 본질을 사유케 하는 중간시간으로서의 조각은, 찢기고 이어 붙여 새롭게 탄생한 ‘결정된 애매함’이다. 결과적으로 시선을 통해 자신의 밖으로 회귀하며 존재의 주체성을 말한다.

 

전시 제목 “빨대의 구멍은 몇 개일까?”에 대한 대답은, 2개 혹은 1개, 그리고 구 멍이 뚫려 있지 않다, 구멍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등 다양한 의견이 주장되었다. 간단해 보이지만 '구멍'의 정의에 따라 달라지는 의견으로 화제를 모은 질문이다. 일상에서 사물을 감각 하는 것과 같이 이번 전시를 통해 각자의 시선이 이야기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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